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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 발명인(2007-08-11 16:24:40, Hit : 8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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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지시로 "고려가 삼국통일했다?"


[특별 리포트] 북한 방문기/"냉면맛도 장군님의 교시 덕분",물질은 형편없고 이념과 구호가 판치는 이념과잉의 공화국.
최원기(VOA)    



보수와 수리를 못해 칙칙한 평양의 빌딩들.


[특별 리포트] 북한 방문기/1회 - ‘평양, 이념 과잉 도시’

2007년 7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 기자가 직접 둘러본 평양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찬양과 각종 구호가 넘쳐나는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의 얼굴에는 생활고에 지쳐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최근 한국의 한 방북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다녀온 저희 방송 최원기 기자가 살펴본 2007년 7월 북한의 모습을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최 기자는 6월28일부터 나흘 간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를 둘러봤습니다.


순안 공항의 북한 비행기

지난 6월28일 오전 10시. 기자는 서울 김포공항에서 북한 민항기인 고려항공 일반석 20A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국의 한 민간단체의 주선으로 구성된 100여명 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 등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내에는 북녁땅을 가본다는 설레임과 흥분이 가득했습니다.

비행기는 불과 1시간 만에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전면에 나붙어 있는 순안공항의 2층 청사는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1960년대 서울의 김포공항 청사도 그 보다는 나을 것 같았습니다.


고려항공의 승무원

기자는 공항에 서 있는 비행기를 세봤습니다. 헬리콥터 한 대를 포함해 모두 14대였습니다. 그 중 7대는 제트기고 나머지 6대는 구식 프로펠러기였습니다. 그나마 고장이 나서 천을 씌워놓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외국 항공기는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중국 비행기도 없고 러시아 비행기도 없었습니다. 새삼 북한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가 동행한 100여명의 방북단은 모두 4대의 관광버스에 나눠 탔습니다. 버스 한 대마다 3~4명씩 탑승한 북측 안내원들은 다소 쑥스러워하면서 남측으로부터 온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이밖에도 안내원들이 주의를 준 것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사진을 찍지 말 것, 북한 주민을 만나는 등 개인 행동을 하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또 안내원은 남북한 간의 언어차이에서 오는 문제도 얘기했습니다.

예컨대 북한 사람들은 “일 없습니다” 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는 ‘괜찮습니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은 이 말을 ‘나는 관계없다’ 라는 뜻으로 해석해 기분 나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버스 뒤에서 누군가가 익살스런 목소리로 “일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농담 한 마디로 버스 안의 분위기는 단박에 화기애애해졌습니다.

방북단은 이날 오후에 평양 방문의 `필수' 코스를 둘러봤습니다.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고향인 만경대와 그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는 만수대, 그리고 소년 학생궁전 등을 차례로 돌아보고 저녁에는 북한 어린이들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기자의 눈에 북한은 정신과 물질의 균형이 깨진 나라였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해 평양은 물질은 형편없고 대신 이념과 구호가 판치는 이념과잉의 도시였습니다. 어디를 가도 ‘혁명과 항일,’ 그리고 1930년대 신파극의 변사를 떠올리게 하는 여성 해설원의 ‘김일성,김정일 찬양’으로 가득 찬 사회였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평양시내의 모습

북한에 이념이 과잉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물질 사정은 극도로 어려워 보였습니다. 기자가 묵은 대동강변의 양각도 호텔은 사정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음식도 풍부하고 객실도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외국인 관광객용 시설에 국한된 얘기고, 평양은 아직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길가에 서있는 회색의 칙칙한 건물은 10년 이상 보수와 수리를 못한 듯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잔뜩 간 흉측한 상태였습니다. 도로는 금이 가고 울퉁불퉁했습니다.


보수와 수리를 못 해 칙칙한 평양의 빌딩

노동당이 부르는 혁명의 노래, 김일성, 김정일 찬가도 주민들에게 크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회색 인민복을 입은 남자들이나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차림의 여성들은 생활고에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었습니다.

가끔 길가의 어린이들만이 평소 보지 못하던 외제 버스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 볼 뿐이었습니다.

북한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 방북단은 다시 항공편으로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한 시간 뒤에 백두산 인근 삼지연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또다시 소형버스에 나눠 타고 백두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백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웠습니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고, 도로 주변에는 야생초와 들꽃이 가득했습니다. 7월인데도 백두산 능선에는 군데군데 눈이 있었습니다.

기자는 10년 전에 중국 연변을 거쳐 백두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구름 속에서 천지를 보면서 ‘백두산을 북한 쪽에서 올라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북한 쪽에서 본 백두산 천지

이제 마침내 그 바람이 이뤄져 북한 쪽 코스로 백두산 정상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백두산 정상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름과 안개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천지는 신비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백두산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10년 만에 바람이 이뤄졌다는 감격에 백두산 정상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오랫동안 그렇게 서있었습니다. 그러나 감격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디선가 북한의 여성 해설원이 나타나 ‘장군님 찬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서 만난 북한 해설원

게다가 백두산 정상에는‘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 1992년 2월 16일’이라고 쓰여진 엄청나게 큰 구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기자는 백두산을 내려오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두산은 한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자 민족의 상징인 산입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백두산을 체제 선전과 장군님 자랑의 소재로 전락시켰습니다.

북한이 언제쯤 이념과잉에서 탈피해 주민들의 삶을 돌보는 정상적인 국가가 될지 궁금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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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리포트] 북한 방문기 -2회- ‘평양의 신세대 안내원’


남한으로부터 온 손님들을 안내하는 북한측 관계자들은 대부분 최고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기본개념이 없는데다, 바깥 사정에도 매우 어두웠습니다. 지난 6월28일부터 나흘 간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를 둘러본 `미국의 소리' 방송 최원기 기자의 방북기, 두 번째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4박5일 간의 방북기간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였습니다. 100여명의 방북단은 모두 4개 조로 나눠서 버스 4대에 나눠타고 평양과 묘향산을 다녔습니다. 버스 한 대에는 대개 남측 인사 30명이 타고, 북측 안내원이 3~4명 동승했습니다.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은 남북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통성명을 하고 날씨, 건강, 가족같은 비정치적인 얘기를 하며 탐색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안면을 튼 북측 안내원은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서울의 정치상황을 집중적으로 캐묻고, 남측 사람들도 북한의 자금이 동결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BDA은행이나 핵 문제 등을 물었습니다.

기자는 옆 자리에 앉은 곱상한 안내원으로부터 북한 연예계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김 선생’이라고 밝힌 이 안내원에 따르면 요즘 북한에서 한창 뜨는 영화는 ‘평양 날파람’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일제시대에 평양의 태권도 고수가 일본과 싸우는 항일 액션극으로, 무려 600만명이 관람했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서울에서도 널리 알려진 북한 노래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이 왜 요즘은 노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김 선생은 전혜영은 요즘은 뒤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며, 요즘 한창 뜨는 가수는 ‘김정녀’라고 귀띔해 줬습니다. 그래서 안내원의 추천에 따라 보천보 전자악단이 반주를 한 김정녀의 CD를 한 장 샀습니다.

이번 방북길에 만난 안내원들은 과거에 만났던 북한 안내원들과 달랐습니다. 기자가 9년 전인 1998년 금강산 관광길에 만난 북한 안내원들은 최소 쉰 살을 넘긴 중장년 층이었습니다.

이들은 금강산을 찾은 남측 관광객을 상대로 ‘연방제 통일방안’과 ’주한미군’ 등을 주제로 곳곳에서 입씨름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평양에서 만난 안내원들은 모두 30대의 젊은 신세대였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세대교체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안내원들은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식량사정이 어떠냐고 묻자 ‘긴장된 상태’라고 대답했습니다. 배급이 가끔 안 나오는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식량을 구하러 1주일에 한두 번은 평양 시내에 설치된 시장에서 쌀을 구입한다고 했습니다.

노동당의 젊은 엘리트가 이 정도니 일반 주민들의 식량 사정은 더욱 빡빡한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도로 옆 하천, 저수지, 웅덩이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주민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 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방북 사흘째,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걸리는 묘향산을 가던 중 거리에서 본 차량은 9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고위 당 간부가 타고 다니는 벤츠 승용차 2대와 방북단을 태운 관광버스 4대, 그리고 트럭 2대와 낡은 버스 1대가 전부였습니다.

평양은 19개의 행정구역이 있는데 전기가 부족해 구역별로 시차를 두면서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대동강변에 높게 솟아 있는 주체사상탑도 오후 11시가 되면 불이 꺼졌습니다. 수도인 평양이 이 정도니 농촌지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내원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미제가 침략 책동을 벌이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그러나 미국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대동강변의 주체탑

북한의 신세대 안내원들은 과거의 중장년층 안내원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젊은데다 비교적 솔직했고,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북한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북한체제의 핵심적 모순과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북한이 지금 직면한 최대 문제는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고립이고, 내부적으로는 경제난입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핵포기를 전제로 한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개혁,개방을 통한 시장경제 도입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들은 문제점은 알고 있지만 이를 풀어가는 구체적인 해법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북한의 안내원들은 시장경제 체제의 기초인 ‘가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격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가도 잘 모르고 이윤도 몰랐습니다. 또 국가가 가격을 일방적으로 정할 때 가격체계가 어떻게 왜곡되고 물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몰랐고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가격을 모르니 금리도 모르고, 인플레나 환율도 몰랐습니다.

북한의 승려(왼쪽)와 남한의 승려(오른쪽)

안내원들은 바깥 사정에도 어두웠습니다. 기자가 만난 10명의 안내원 중 이웃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 2명만이 남북 회담차 서울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이며 경제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가격과 금리 같은 초보적인 경제지식도 없고, 외부세계의 사정에도 어두운 북한의 엘리트들이 21세기의 험난한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새삼 걱정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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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리포트] 북한 방문기 -3회- '평양을 떠나며'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 최원기 기자가 둘러본 북한은 사회 전체가 사망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비효율적인 정치체제 였습니다. 최고 지도자의 교시는 심지어 역사 해석까지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입니다. 최원기 기자의 방북기, 세 번째 마지막 순서입니다.


삼지연의 김일성 동상

방북단이 4박5일 간 평양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은 양각도 호텔 3층의 양복점이었습니다. 이 곳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맞춤 양복을 해 입을 수 있는 작은 양복점이 있었는데 가격이 아주 좋았습니다. 위아래 싱글 맞춤 양복 가격이 130달러였습니다.

서울에서 웬만한 기성복이 30만원, 300 달러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3분의1 가격에 불과했습니다. 또 양복점을 운영하는 여자 재단사의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기자도 여기에서 양복을 한 벌 해 입었는데 그 솜씨가 서울의 일류 양복점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양복점이 돈을 더 벌고 싶어도 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양복 가격이 싸고 재단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같이 간 방북단 1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양복을 맞추기 위해 이 곳에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2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양복감과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기자는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양복점이 관광객들에게 양복을 많이 맞춰줘서 외화를 많이 버는 것은 재단사 개인에게도 좋고 양각도 호텔에도 좋고 북한에도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양복점은 당의 지시와 장군님의 교시가 없으면 양복감도 일손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기자와 일행인 한 교수는 이를 보고 “북한이 자원배분을 엉망으로 해 경제가 비효율적 ”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체제의 비효율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기자가 묵었던 양각도 호텔은 1995년에 세워진 북한의 대표적인 특급 호텔입니다. 그러나 47층에 1001개의 객실 수를 자랑하는 이 호텔은 불과 300개 객실에만 손님이 들어 있었습니다. 무려 70%가 비어있는 것입니다. 반면 노동당 간부 수십 명은 돈 한푼 내지 않고 호텔에 묵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호텔 지배인에게 “만일 서울에서 호텔이 이 정도로 비어있다면 지배인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지배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나의 임무는 손님을 편히 모시는 것이고, 손님을 불러 모으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체제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교시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모든 일상사에 교시를 내리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갔습니다. 기자 일행은 방북 나흘째 되는 날 대동강변의 냉면 전문식당인 옥류관을 찾았습니다.


옥류관의 냉면

냉면은 소문대로 훌륭했습니다. 우선 육수가 심심하면서 그 맛이 깊었습니다. 또 메밀로 된 면발은 투박하면서도 툭툭 끊어지는 것이 좋았습니다. 냉면 맛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자 안내원은 곧바로, `맛이 좋은 것은 장군님의 교시 덕분'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육수를 만드는 방법과 면발의 배합 비율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냉면을 먹을 때 식초를 육수에 치지 말고 면발 위에 치라는 것까지 지시했다고 합니다. 모두들 안내원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안내원의 심각한 표정으로 미뤄볼 때 이는 사실인 듯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교시 정치’는 냉면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역사 해석도 김 위원장의 교시 한 마디로 하루아침에 바뀌었습니다.

  기자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방문하는 길에 북한이 고려가 삼국통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자가 알기에 북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으로 해왔습니다. 안내원에게 왜 삼국통일을 한 것이 신라가 아니냐고 묻자 김정일 위원장의 가르침으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고 그의 견해에 따라 역사를 바꾸는 것은 분명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학문의 영역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군림할 경우 학문의 생명인 창의성과 다양성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당의 선전선동도 북한체제가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텔레비전을 기준으로 할 때 통상 70~80%가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한 국가의 국민들이 지도자에게 존경심을 갖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존경심 수준이 아니라 지도자를 거의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지도자와 국민의 관계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될 때 그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외부세계에 대한 정확한 소식과 정보를 전해줘야 할 보도 매체가 50년도 더 묵은 항일 빨치산 얘기를 매일 고장난 레코드처럼 틀고 있는 것도 북한의 발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생각됐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역사발전의 주체로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주체사상에도 180도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북한사회에서 주민들은 모든 주체성과 창의성을 잃고 김 위원장에게 끝없는 끊없이 찬양을 바쳐야만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4박5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평양 순안공항에 나왔습니다. 고려항공 민항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동안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이렇게 비효율적인 체제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동시에 만일 북한이 지금처럼 대외적인 고립과 내부의 선전선동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생각 밖으로 체제가 오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쪽 생각이 맞는지는 장차 역사가 알려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난 6월28일부터 나흘 간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의 소리 최원기 기자의 방북기를 세 차례로 나눠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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